청주지방법원 2021. 9. 2. 선고 2019재노7 판결 [국가보안법위반]
판시사항
참조조문
참조판례
심판대상조문
판례내용
- 피고인
- A
- 주거
- 등록기준지
- 검사
- 장영일(기소), 신지원(공판)
- 변호인
- 법무법인 이산 담당변호사 이원영, 변호사 오원근
- 재심대상판결
- 청주지방법원 1990. 1. 25. 선고 89노563 판결
- 원심판결
- 청주지방법원 제천지원 1989. 10. 7. 선고 89고단209 판결
- 판결선고
- 2021. 9. 2.
원심판결을 파기한다. 피고인은 무죄. 이 판결의 요지를 공시한다.
1. 이 사건의 경과
이 사건 기록에 의하면 아래와 같은 사실이 인정된다.
가. 피고인은 1989. 6. 27. 청주지방법원 제천지원에 국가보안법위반으로 공소제기되었다. 검사가 공소를 제기한 공소사실은 별지 공소사실 기재와 같고, 그 요지는 아래와 같다. 피고인은 1989. 3. 1. 충북 B고등학교의 일본어 교사로 임용된 자로서,
1. 1989. 4. 11. 11:30경 충북 B고등학교 C반 교실에서 D 등 학생 52명을 상대로 일본어 수업 중 ‘6·25는 당시 북한이 남침을 한 것이 아니고 미군이 먼저 북한을 침범하여 일어난 것이다’라고 교육함으로써 반국가단체인 북한공산집단의 주장에 동조하고,
2. 위 같은 달 25. 11:30경 같은 장소에서 위 D 등 학생 54명을 상대로 일본어 수업 중 북한의 자연경관, 평양시가 모습, 김일성 동상, 주체사상탑, 북한주민의 생활상, 각종 산업활동 등의 칼라사진 59장과 북에서는 누구나 원칙적으로 1일 8시간, 주 6일간 노동하고 교육과 의료는 국가가 부담하며 의식주도 국가로부터 제공되고 있어서 일생생활이 곤란하지 않다는 등의 설명이 수록된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출판의 '보고 싶은 산하‘라는 제목의 화보집을 학생들에게 보여주면서 ’여러분은 북한이 못사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잘 살고 있다. 북한 사람들은 6·25 사변 때 미국 공군의 극심한 폭격으로 폐허가 된 평양을 스스로의 힘으로 오늘날의 모습과 같이 재건한 사실에 대하여 커다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 사진과 같이 북한 사람은 옷도 잘 입고 높은 건물도 많아 학생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나쁜 곳이 아니다. 북한은 평화롭고 살기 좋은 곳이다. 북한에도 주말에는 낚시를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라는 등의 교육을 함으로써 반국가단체인 북한공산집단을 찬양, 고무한 것이다.
나. 위 법원은 1989. 10. 7. 이 사건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피고인에 대하여 징역 1년을 선고하였다(청주지방법원 제천지원 89고단209호). 이에 대해 피고인은 사실오인 내지 법리오해 및 양형부당을 이유로, 검사는 양형부당을 이유로 각 항소하였고, 이 법원은 1990. 1. 25. 피고인의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 주장을 배척한 다음 피고인의 양형부당 주장을 받아들여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피고인에 대하여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하였다(청주지방법원 89노563호, 이하 이 법원의 판결을 ‘재심대상판결’이라 한다).
다. 피고인이 재심대상판결에 대하여 상고하였고, 대법원은 1990. 6. 22. 피고인의 상고를 기각하여 재심대상판결이 그대로 확정되었다.
라. 피고인은 2019. 5. 28. 이 사건 재심을 청구하였고, 이 법원은 피고인이 E경찰서 대공과 소속 수사관들에게 불법 체포 및 감금된 상태에서 조사를 받은 사실을 인정하고, 수사관들의 위 행위는 인신구속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가 그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을 체포 또는 감금한 경우로서 형법 제124조에 정한 불법체포·감금죄에 해당하며, 수사관들이 피고인을 불법 체포·감금한 것은 1989. 5. 25.까지인데 형법 제124조에 정한 불법체포·감금죄는 그 법정형이 ‘7년 이하의 징역과 10년 이하의 자격정지’로서 구 형사소송법상 공소시효 기간이 5년이므로(제249조 제1항 제4호) 위 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완성되어 위 죄에 대하여는 유죄판결을 얻을 수 없는 사실상, 법률상의 장애가 있는 경우에 해당하여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 제422조에 정한 재심사유가 있다는 이유로 2019. 11. 28. 재심개시결정을 하였다.
마. 위 재심결정은 항고기간의 도과로 그대로 확정되었다.
2. 항소이유의 요지
가. 피고인1)
1) 1989. 4. 11.자 국가보안법위반의 점에 대한 사실오인
피고인은 이 부분 공소사실과 같이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6.25는 당시 북한이 남침을 한 것이 아니고 미군이 먼저 북한을 침범하여 일어난 것이다.”(이하 ‘이 사건 북침발언’이라 한다)라고 말한 사실이 없다. 그럼에도 증거능력이 없거나 신빙성이 없는 증거들만으로 이 부분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에는 사실을 오인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2) 1989. 4. 25.자 국가보안법위반의 점에 대한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 피고인은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북한의 사회·경제적인 현실을 바로 알게 설명하려는 목적으로 화보집에 실린 백두산, 금강산, 평양 시가지, 평양 지하철 사진 등을 보여주면서 북한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설명하였고 그 과정에서 김일성 동상 사진을 보여주면서 공산독재체제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서도 함께 설명한 사실이 있을 뿐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찬양, 고무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이롭게 하는 발언을 한 사실이 없다. 설령 피고인이 이 부분 공소사실과 같은 발언을 한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발언 행위만으로는 국가의 존립·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미칠 구체적이고 명백한 위험성이 없으므로 구 국가보안법(1991. 5. 31. 법률 제4373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국가보안법’이라 한다) 제7조 제1항 위반으로 처벌할 수 없다. 그럼에도 증거능력이 없거나 신빙성이 없는 증거들만으로 이 부분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에는 사실을 오인하고 구 국가보안법 제7조 제1항의 적용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3) 양형부당
원심이 피고인에 대하여 선고한 형(징역 1년)은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
나. 검사(양형부당)
원심이 피고인에 대하여 선고한 형은 너무 가벼워서 부당하다.
3. 판단
가. 관련 법리
1) 재심개시의 결정이 확정된 사건에 대하여는 법원은 그 심급에 따라 다시 심판을 하여야 하는데(형사소송법 제438조 제1항), 여기에서 다시 심판한다는 것의 의미는 재심대상판결의 당부를 심사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 자체를 처음부터 새로 심판하는 것을 의미하고, 재심청구에 의한 심판절차에 있어서 원 확정판결의 소송절차에서 행하여진 증거조사의 결과가 당연히 증거로 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재심개시 결정이 확정된 경우 법원은 재심개시 후 증거신청, 증거결정, 증거조사 등의 절차를 새로이 진행하여 증거능력을 구비하고 적법한 증거조사를 마친 것에 한하여 증거로 사용할 수 있고, 재심대상판결의 기초가 된 증거들 중 증거능력이 있는 증거들 및 그 이후에 수집된 증거들을 모두 종합하여 공소사실에 대한 판단을 하여야 한다(대법원 2004. 9. 24. 선고 2004도2154 판결, 대법원 2015. 2. 12. 선고 2014도9695 판결 등 참조).
2) 재심이 개시된 사건에서 범죄사실에 대하여 적용하여야 할 법령은 재심판결 당시의 법령이고, 재심대상판결 당시의 법령이 변경된 경우 법원은 재심판결 당시의 법령을 적용해야 하며, 법령을 해석할 때도 재심판결 당시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대법원 2011. 10. 27. 선고 2009도1603 판결). 구 국가보안법은 1991. 5. 31. 법률 제4373호로 개정되어 찬양·고무죄의 구성요건에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라는 요건이 모두 추가되었는데, 이는 위 처벌규정이 문언의 다의성과 적용범위의 광범성으로 인하여 형사처벌이 확대될 위헌적 요소가 있으므로 국가의 존립·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줄 명백한 위험이 있을 경우만으로 축소하여 적용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헌법합치적 해석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한정합헌 결정(헌법재판소 1990. 4. 2. 선고 89헌가113)에 따른 것이다. 이는 법률이념의 변경에 따라 법령을 개폐한 것이어서 형법 제1조 제2항에 따라 ‘범죄 후 법률의 변경에 의하여 그 행위가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결국 이 사건에 적용할 법령은 신법인 현행 국가보안법 제7조 제1항으로 보아야 한다. 국가보안법이 적용되는 경우로서 국가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위험성이 있는 경우라 함은 국가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구체적인 위험을 발생시키는 경우에 한정한다고 풀이함이 타당하다(대법원 2008. 4. 17. 선고 2003도758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나. 검사가 제출한 증거의 증거능력에 관한 판단
1) 검사가 제출한 증거
검사는 이 사건 공소사실을 입증하기 위하여 ㉠ 피고인에 대한 각 검찰 및 경찰 피의자신문조서, 검찰 및 경찰 수사단계에서 작성된 피고인의 각 진술서, ㉡ 참고인 D, F(개명 후 성명 FF, 이하 ‘F’이라 한다), G(개명 후 성명 GG, 이하 ‘G’라 한다), H, I, J, K, L, M, N, O, P, Q에 대한 각 검찰 진술조서, 참고인 D, F, P, R, I, G, S, T, U, K, V에 대한 각 경찰 진술조서, 경찰 수사단계에서 작성된 L, D, N, F, G, M의 각 진술서, ㉢ 각 압수물 및 압수조서, ㉣ 감정서를 증거로 제출하였다.
2) 피고인에 대한 각 피의자신문조서 및 각 진술서[위 1)의 ㉠항]
가) 1989. 5. 24.자 피고인의 진술서, 1989. 5. 24.자 각 경찰 피의자신문조서 및 1989. 5. 25.자 경찰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 기록에 의하면, E경찰서 대공과 소속 경감 W외 4명은 1989. 5. 24. 충북 B고등학교 교장실에서 국가보안법위반 혐의에 관한 수사를 목적으로 피고인을 검거하고 E경찰서로 연행하였고, 피고인은 그로부터 1989. 5. 25. 20:20 구속영장 집행에 의하여 구금될 때까지 E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된 채 불법 구금 상태에서 진술서를 1회 작성하고 3회에 걸쳐 피의자신문을 받은 사실이 인정되는바, 위와 같은 불법 체포 및 구금 중에 작성된 위 진술서 및 각 경찰 피의자신문조서는 헌법 제12조 제1항, 제3항과 형사소송법 제200조의2, 제201조 등이 규정한 체포·구속에 관한 영장주의 원칙에 위배하여 수집된 증거로서 형사소송법 제308조의2에 의하여 그 증거능력이 없다.
나) 나머지 각 피의자신문조서 및 진술서의 증거능력
위 가)항 기재 진술서 및 각 피의자신문조서를 제외한 나머지 각 피의자신문조서 및 진술서는 피고인이 원심에서 피고인에 대한 각 검찰 피의자신문조서에 대하여 그 진정성립 및 임의성을 인정하였고, 피고인에 대한 각 경찰 피의자신문조서 및 피고인의 각 진술서에 대하여 성립의 진정, 내용 및 임의성을 인정하였으므로, 위 각 피의자신문조서 및 각 진술서는 증거능력이 인정된다.
3) 참고인 등에 대한 각 진술조서 및 각 진술서[위 1)의 ㉡항]
가) 피고인이 원심에서 증거 동의한 진술증거
피고인은 원심에서 참고인 G, H, M, O, P, Q에 대한 각 검찰 진술조서, 참고인 P, R, S, T, U, V에 대한 각 경찰 진술조서, 경찰 수사단계에서 작성된 M의 진술서에 대해 증거로 함에 동의하였으므로, 위 각 진술조서 및 진술서는 증거능력이 인정된다.
나) D, F에 대한 각 경찰 및 검찰 진술조서, I에 대한 각 경찰 및 검찰 진술조서 중 일부(D으로부터 피고인이 이 사건 북침발언을 말하였다는 것을 들었다는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 K에 대한 각 경찰 및 검찰 진술조서 중 일부(재전문진술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 J, N에 대한 각 검찰 진술조서, L에 대한 검찰 진술조서 중 일부(전문진술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 G에 대한 경찰 진술조서, F, D, N, G 작성의 각 진술서, L 작성의 진술서 중 일부(전문진술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 위 진술증거는 진술자들이 원심 법정에 출석하여 성립의 진정을 인정하였으므로 증거능력이 인정된다. 이에 대해 피고인 및 변호인은 위 각 진술증거들은 경찰 등의 압박에 의하여 임의성이 없는 상태에서 작성된 것이어서 증거능력이 없다고 주장하나, 기록상 진술자들이 임의성 없는 심리상태에서 위 각 진술증거들을 작성한 것이라고 의심할 만한 사정이 나타나 있지 않고, D, F, G, J이 재심개시 후 당심(이하 ‘당심’이라 한다) 법정에서 “당시 허위의 내용을 진술하도록 강요받은 적은 없고 경험한 대로 진술하였다.”라는 취지로 진술하였는바(D에 대한 증인신문 녹취서 제19쪽, F에 대한 증인신문 녹취서 제13쪽, G에 대한 증인신문 녹취서 제14쪽, J에 대한 증인신문 녹취서 제9쪽), 위 진술증거의 각 진술자들의 진술에 임의성이 인정된다고 판단되므로 피고인 및 변호인의 위 주장은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다) I에 대한 각 경찰 및 검찰 진술조서 중 일부(D으로부터 피고인이 이 사건 북침발언을 말하였다는 것을 들었다는 부분), K에 대한 각 경찰 및 검찰 진술조서 중 일부(재전문진술 부분), L에 대한 검찰 진술조서 및 L 작성의 진술서 중 일부(전문진술 부분) ① 전문진술은 형사소송법 제310조의2의 규정에 의하여 원칙적으로 증거능력이 없고, 형사소송법 제316조 제2항의 규정에 따라 원진술자가 사망, 질병, 외국거주 기타 사유로 인하여 진술할 수 없고 그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 하에서 행하여진 때에 한하여 예외적으로 증거능력이 있다고 할 것이고, 전문진술을 기재한 조서는 형사소송법 제312조 또는 제314조의 규정에 의하여 각 그 증거능력이 인정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하여야 함은 물론 나아가 형사소송법 제316조 제2항의 규정에 따른 위와 같은 요건을 갖추어야 예외적으로 증거능력이 있다고 할 것이다. 한편, 형사소송법은 전문진술에 대하여 제316조에서 실질상 단순한 전문의 형태를 취하는 경우에 한하여 예외적으로 그 증거능력을 인정하는 규정을 두고 있을 뿐, 재전문진술이나 재전문진술을 기재한 조서에 대하여는 달리 그 증거능력을 인정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아니하고 있으므로, 피고인이 증거로 하는 데 동의하지 아니하는 한 형사소송법 제310조의2의 규정에 의하여 이를 증거로 할 수 없다(대법원 2004. 11. 12. 선고 2004도4044 판결 등 참조). 살피건대, 아래 증거는 피고인이 증거로 채택함에 부동의하였고, 전문진술 내지 재전문진술로 증거능력이 없다. ② I에 대한 각 경찰 및 검찰 진술조서 중 I가 D으로부터 피고인이 이 사건 북침발언을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전해 들었다는 부분은 전문진술로 원진술자인 D이 원심 법정에 출석하여 진술하였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10조의2, 제316조 제2항에 따라 증거능력이 없다. ③ L에 대한 검찰 진술조서 중 L이 D, F으로부터 피고인이 이 사건 공소사실 기재와 같은 발언을 하였다는 것을 들었다고 전해 들었다는 부분은 전문진술로 원진술자인 D, F이 원심 법정에 출석하여 진술하였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10조의2, 제316조 제2항에 따라 증거능력이 없다. ④ K에 대한 각 경찰 및 검찰 진술조서 중 K이 L 및 V로부터 D, F이 ‘피고인이 이 사건 공소사실 기재와 같은 발언을 하였다.’라고 말한 것을 전해 들었다는 부분은 재전문진술을 기재한 조서로 형사소송법 제310조의2에 따라 증거능력이 없다.
4) 각 압수물, 압수조서 및 감정서[위 1)의 ㉢, ㉣항]
기본적 인권 보장을 위하여 압수·수색에 관한 적법절차와 영장주의의 근간을 선언한 헌법과 이를 이어받아 실체적 진실 규명과 개인의 권리보호 이념을 조화롭게 실현할 수 있도록 압수·수색절차에 관한 구체적 기준을 마련하고 있는 형사소송법의 규범력은 확고히 유지되어야 하므로,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정한 절차에 따르지 않고 수집한 증거는 물론이거니와 이를 기초로 하여 획득한 2차적 증거 또한 기본적 인권 보장을 위해 마련된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않은 것으로서 원칙적으로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 다만 수사기관의 절차 위반행위가 적법절차의 실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아니하고, 그 증거의 증거능력을 배제하는 것이 오히려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형사소송에 관한 절차 조항을 마련하여 적법절차의 원칙과 실체적 진실 규명의 조화를 도모하고 이를 통하여 형사사법 정의를 실현하려고 한 취지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으로 평가되는 예외적인 경우에 한하여 그 증거를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을 뿐이다(대법원 2007. 11. 15. 선고 2007도3061 전원합의체 판결). 원심 및 당심에서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사실 및 사정들, 즉 ① 제천경찰서 대공과 소속 경감 W, 경위 X, 경사 Y, Z, 경장 AA은 1989. 5. 24. B고등학교 교장실에서 국가보안법위반 혐의에 관한 수사를 목적으로 피고인을 검거하고 E경찰서로 연행하였고, 피고인은 1989. 5. 24. E경찰서 대공과 조사실로 연행된 후 1989. 5. 25. 20:20 구속영장 집행에 의하여 구금될 때까지 모두 3회에 걸쳐 피의자신문을 받았으며, 조사를 받지 않는 동안에는 E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어 있었는바, 피고인은 영장 없이 강제로 연행된 후 불법 구금 상태에서 조사를 받은 점, ② 각 압수조서에 의하면, 경찰은 1989. 5. 24.경 B고등학교 교무실에 있는 피고인의 책상 및 피고인의 하숙집 방실에서 피고인이 소지 중인 서적 등을 피고인으로부터 임의로 제출 받아 압수하였고, 1989. 5. 25.경 피고인의 본가인 부 甲의 집에서 피고인이 소지 중인 서적 등을 甲 등으로부터 임의로 제출 받아 압수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는데, 이와 같은 압수 당시 피고인은 불법 체포 및 구금된 상태였던 점, ③ 위와 같은 압수와 관련하여 사전 또는 사후에 영장이 발부되지 않았던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해당 압수물은 임의제출 형식으로 수집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불법 체포 및 구금 상태에서 수집된 증거이거나 영장주의 원칙을 위반하여 수집한 증거이고, 각 압수조서도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에 기초하여 획득된 2차적 증거에 해당하여 증거능력이 없다. 따라서 피고인이 원심에서 한 증거 동의에도 불구하고 형사소송법 제308조의2에 의하여 그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고(대법원 2012. 11. 15. 선고 2011도15258 판결 등 참조), 위와 같이 증거능력이 없는 압수조서 및 압수물에 터 잡아 작성된 감정서도 증거능력이 없다.
5) 소결론
따라서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 중 증거능력이 인정되는 증거는 피고인에 대한 각 검찰 피의자신문조서, 피고인에 대한 각 경찰 피의자신문조서(1989. 5. 24.자 각 경찰 피의자신문조서 및 1989. 5. 25.자 경찰 피의자신문조서 제외), 검찰 및 경찰 수사단계에서 작성된 피고인의 각 진술서(1989. 5. 24.자 피고인의 진술서 제외), D, F, H, N, G, J, M, O, P, Q에 대한 각 검찰 진술조서, D, F, G, P, R, S, T, U, V에 대한 각 경찰 진술조서, I에 대한 각 경찰 및 검찰 진술조서 중 일부(D으로부터 피고인이 이 사건 북침발언을 말하였다는 것을 들었다는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 경찰 수사단계에서 작성된 D, F, N, G, M 작성의 각 진술서, K에 대한 각 경찰 및 검찰 진술조서 중 일부(재전문진술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 L에 대한 검찰 진술조서 및 L 작성의 진술서 중 일부(전문진술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다. 이하에서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 중 위와 같이 증거능력이 인정되는 증거들에 의해 이 사건 공소사실이 인정되는지를 살펴본다.
다. 1989. 4. 11.자 국가보안법위반의 점에 대한 사실오인 주장에 관한 판단 원심 및 당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아래와 같은 사실 및 사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이 이 부분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수업 중에 학생들에게 이 사건 북침발언을 하였다는 점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설령 피고인이 이 사건 북침발언을 말하였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행위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할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우며,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그럼에도 이 부분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에는 사실을 오인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1) 피고인은 수사기관에서부터 당심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평소에도 6·25는 북한이 대남 적화 전술에 의해 먼저 남침을 함으로써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해 왔고, 학생들에게 이 사건 북침발언을 한 사실이 전혀 없다.”라고 진술하였다.
2) 이 부분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직접적인 증거는 이 사건 당시 교실에서 피고인의 수업을 들은 학생들인 D, F, H, N, G(이하 ‘D 등’이라 한다)의 수사기관 및 원심 법정에서의 각 진술(D, F, G는 당심에서 ‘당시 경험한 대로 진술하였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다)이 있으나, 아래와 같은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D 등은 자신들이 경험한 사실에 대해 착각하여 진술하였거나 스스로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내용을 일부 교사 및 수사기관이 의도하는 바에 따라 과장하여 진술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워 이를 그대로 믿기 어렵다. ① 이 사건 당시 D 등의 담임교사인 L은 D 등에게 미리 행선지와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수사기관에 데려가 조사를 받게 하였고, D 등은 이 사건 당시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학생들로서 아직 사고력과 분별력이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상태에서 담임교사 및 경찰 등과 이 사건 공소사실과 관련하여 면담을 하면서 피고인에 대한 부정적인 설명을 듣는 과정을 거쳐 진술서를 작성하거나 수사기관에서 진술을 하였으며(D, F, N, G 작성의 각 진술서에는 작성일자도 기재되어 있지 않다) 이후 원심 법정에서 수사기관에서의 진술을 그대로 반복하였는바, 위와 같은 사정들은 D 등의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할 만한 정황에 해당한다. ② D에 대한 경찰 및 검찰 진술조서, D 작성의 진술서 및 원심 법정진술에 관하여 살피건대, D은 진술서에서 피고인이 학생들에게 화보집에 실린 북한의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설명을 하고 이 사건 북침발언을 하였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가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으면서는 사진을 보여준 날과 이 사건 북침발언을 한 날은 서로 다른 날이라는 취지로 진술을 번복하였고, 제1회 경찰조사에서 이 사건 당시 학생들의 반응에 관하여 “다른 사람은 모르겠으나 I에게 이북이 남한을 침범한 것으로 배웠는데 (피고인이) 미군이 먼저 이북을 침범했다고 하니 우리에게 전혀 다른 것을 가르치는 것 아니냐는 말을 하였다.”라고 진술하였으나(증거기록 제48쪽), 이 사건 당시 I는 결석한 상태였는바(증거기록 제316쪽), D이 이 사건 당시 피고인이 한 발언 내용을 정확하게 듣고 기억하여 수사기관 등에서 진술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③ F에 대한 경찰 및 검찰 진술조서, F 작성의 진술서 및 원심 법정진술에 관하여 살피건대, F은 제1회 경찰조사에서 “틀림없이 피고인이 미군이 먼저 북침을 하여 6.25사변이 일어난 것이다.”라고 진술하였다가(증거기록 제53쪽), 피고인과의 대질조사에서는 “당시 수업에 열중한 편은 아니고 다른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D이 I에게 ‘지금 피고인이 6.25는 미군이 북침을 했대’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니까 금방 일어선생이 한 말이 6.25는 남침이 아니고 북침하여 일어난 것이라는 말을 한 것을 알게 된 것이다.”라는 취지로 진술하였으나(증거기록 제80쪽),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당시 I는 결석한 상태였는바, F의 위 진술은 그대로 믿기 어렵다. ④ D 및 F은 수사기관에서부터 피고인이 이 사건 북침발언을 하였다는 진술만을 반복하였을 뿐, 구체적으로 피고인이 이 사건 북침발언을 하게 된 동기나 경위, 전후 상황 및 발언의 맥락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고 피고인이 갑자기 그와 같은 말을 하였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는바, 수업이 시작된 직후여서 교실이 소란스러웠고 D 및 F의 자리가 교실 뒤편이었던 점, 일본어 수업을 담당하던 피고인이 수업 시작 직후 갑자기 이 사건 북침발언을 하였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⑤ H에 대한 검찰 진술조서 및 원심 법정진술, N에 대한 검찰 진술조서, N 작성의 진술서 및 원심 법정진술, G에 대한 경찰 및 검찰 진술조서, G 작성의 진술서 및 원심 법정진술에 관하여 살피건대, H, N, G는 수사기관에서는 피고인이 이 사건 북침발언을 말하는 것을 들었다는 취지로 진술하였으나, 원심 법정에서는 이와 달리 H은 “피고인이 6.25 당시 미군이 먼저 쳐들어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였고(소송기록 제426쪽), N는 “피고인이 하는 말을 얼핏 들었고, 미군이 먼저 북한으로 쳐들어갔다는 것인지 나중에 쳐들어갔다는 것인지는 잘 몰라도 미군이 쳐들어갔다는 말은 들은 것 같다.”라고 진술하였으며(소송기록 제434, 436쪽), G는 “피고인은 북한이 남침을 한 후에 미군이 평양, 함흥 등으로 쳐들어갔다고 말했다.”라고 진술하였는바(소송기록 제568쪽), H, N, G의 수사기관에서의 각 진술은 주요 부분에 있어 원심 법정에서의 위 진술과도 배치되므로 위 각 수사기관에서의 진술은 그대로 믿기 어렵다.
3) 그 밖에 I(학생, D으로부터 들었다는 취지), K(당시 교장, 담임 L으로부터 들었다는 취지), L(당시 담임, D, F으로부터 들었다는 취지)의 원심 법정에서의 진술은 전문진술에 불과하고, 피고인이 증거로 동의한 P(D의 부친, D으로부터 들었다는 취지), Q(국어교사, 담임 L으로부터 들었다는 취지), R(당시 E교육청 계장, 학부형들의 시위 경위 등 조사), S(B고등학교 육성회장, 교장 K로부터 들었다는 취지), T(B고등학교 육성회 총무, 교장 K로부터 들었다는 취지), U(B고등학교 육성회 부회장, 육성회장 S로부터 들었다는 취지), Q(B고등학교 교감, 담임 D, F으로부터 들었다는 취지)의 수사기관 각 진술은 당시 수업시간에 피고인의 북침발언을 직접 들었다는 것이 아니고, L, K 등으로부터 들었다는 것으로 이 부분 공소사실을 유죄로 삼기에 부족하다.
4) 오히려 이 사건 당시 교실에서 피고인의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50여 명에 이르는데 그 중 앞서 본 5명의 수사기관에서 진술이 있을 뿐인데, 당시 수업에 참석한 학생들인 O, BB, CC, DD은 원심 법정에서 피고인이 이 사건 북침발언을 말한 사실이 없거나 피고인의 이 사건 북침발언을 들은 기억이 없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특히 당시 교실 내에서 교탁 바로 앞에 앉아서 수업을 들은 반장 O은 원심 법정에서 “피고인이 평양시가지 사진을 보여주면서 6.25. 당시 미군공군기가 평양을 폭격했다는 말은 들었는데, 미군이 북침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 6.25 당시 미군공군기가 평양을 무자비하게 폭격했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미군북침으로 주장하고 남한에서는 인천상륙작전을 유엔군의 도움을 받아 했기 때문에 남침설이라고 한다고 말한 것으로 거의 확실하게 기억한다.”라고 진술하였고(소송기록 제444, 447쪽), 당심 법정에서도 “피고인이 수업시간에 6.25가 북침이라고 가르친 적이 없었다.”라고 진술하였는바, O의 위 진술은 직접 경험한 사실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고 진술내용이 구체적이고 일관되어 신빙성이 높다고 판단되고, 피고인의 주장에 부합하고 있다.
라. 1989. 4. 25.자 국가보안법위반의 점에 대한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 주장에 관한 판단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을 종합하면, 피고인이 북한 주민들의 경제적인 상황 및 여가 활동, 북한 도시의 모습 등에 대하여 일부 긍정적인 발언을 한 사실이 인정되기는 한다. 그러나 설령 피고인이 이 부분 공소사실 기재와 같은 발언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원심 및 당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아래와 같은 사실 및 사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이 수업시간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 목적 하에 시사적인 문제에 관하여 개인적인 의견을 표명한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보일 뿐이고,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달리 그와 같은 행위가 객관적으로 반국가단체의 이익이 된다거나 피고인에게 주관적으로 반국가단체에 이롭다는 데 대한 인식이 있었다고 보이지 않으며, 피고인의 행위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할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어려우며,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그럼에도 이 부분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에는 사실을 오인하거나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① 피고인은 수사기관에서부터 일관되게 “학생들이 북한에 대하여 다소 잘못 알고 있는 내용을 바로 알려주기 위해 사진을 이용해 북한의 현실에 대한 긍정적인 모습과 부정적인 모습을 설명하였을 뿐 북한을 찬양한 사실이 없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② 이 부분 공소사실과 관련하여 피고인이 한 구체적인 발언내용에 관하여, D은 원심 법정에서 “피고인이 금강산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산하를 외국인은 가볼 수 있는데 우리민족은 가볼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있고, 언젠가 통일이 되면 여러분들도 수학여행이나 신혼여행을 가볼 수 있을 것이다.’라는 취지로 말하였다.”라고 진술하였고(소송기록 제402쪽), F도 원심 법정에서 “피고인이 사진을 보여주면서 건물이 높다는 말과 학생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북한도 그렇게 못 살지 않는다는 등의 말을 했다. 피고인이 학생들에게 북한이 좋다는 점을 가르치기 위해 사진을 보여주고 설명을 하였던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피고인이 통일을 바라고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사진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라고 진술하였는바(소송기록 제420, 422쪽), 피고인의 발언을 들은 학생들의 입장에서도 피고인이 북한을 이롭게 한다는 인식하에 객관적으로 북한에게 이익이 되는 행위를 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③ O은 수사기관에서 “피고인이 김일성 동상이 있는 화보를 보여주면서는 실제의 사람과 동상을 비교하면서 북한이 이와 같이 발전을 하였어도 아직까지 독재를 하고 있다는 등의 말을 하였다.”라고 진술하였고(증거기록 제377쪽), 원심 법정에서도 “피고인이 주체사상탑과 김일성 동상을 보여주면서 폐허가 된 당시보다는 발전했지만 동상 앞의 사람의 크기와 비교하면서 김일성 동상을 보아도 공산독재체제를 알 수 있으며 만약에 서울 시내에 주체사상탑이 있으면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라고 진술하였는바(소송기록 제443쪽), 이에 의하면 피고인은 사진자료를 통해 북한의 독재체제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표명하기도 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4. 결론
피고인의 항소는 이유 있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6항에 의하여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변론을 거쳐 다시 아래와 같이 판결한다.
다시 쓰는 판결 이유 이 사건 공소사실은 별지 공소사실 기재와 같은바, 이는 위 제3항에서 본 바와 같이 범죄의 증명이 없거나 범죄로 되지 아니하는 때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에 의하여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되, 형사소송법 제440조 본문에 의하여 이 판결의 요지를 공시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공소사실 피고인은 1981. 1.경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3.경 ◯◯대학교 사범대학 외국어학과에 입학하였다가 1982. 10.경 군복무를 위하여 휴학한 뒤 1985. 9.경 복학하였으나 경제적 사정으로 같은 해 10.경 휴학한 후 1986. 5.경까지 식당 종업원으로 종사하다가 같은 해 9.경 다시 복학하여 재학 중 1988. 10.경부터 1989. 2.경까지 진주시 소재 ◯◯서점의 점원으로 종사하다가 1989. 2. 25. 위 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해 3. 1. 충북 B고등학교의 일본어 교사로 임용된 자로서, 1987. 6.경부터 1989. 4.경까지 경남 ◯◯시 피고인의 주거지 및 충북 B군 피고인의 하숙방 등지에서, 북한은 주체사상을 바탕으로 정치적 자주성을 확립하고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 있어 발전을 이룩하여 실업, 빈부차, 노사갈등 등의 사회악이 없는 평화로운 곳이고 우리나라에서는 미국과 매판자본가, 매판관료, 군부 등의 반민족적 집단이 안보와 반공이라는 이름하에 통일을 가로막고 있으므로 미군을 몰아내고 모든 외국과의 의존 내지 종속관계를 청산하며 국가보안법, 노동법 등 제반 악법을 철폐시켜 다방면의 남북교류를 실시하고 반민족적, 반민주적 세력과의 철저하고도 치열한 투쟁 과정을 통하여 통일을 이룩하여야 한다는 내용의 ‘감자씨와 볍씨의 통일이야기’ 및 6·25 사변의 책임을 용공의 시각에서 이승만 정권과 미국에 전가하면서 북한의 공산주의를 비호하는 내용의 ‘찢겨진 산하’를 비롯하여 ‘무엇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항일민족론’, ‘들어라 역사의 외침을’, ‘못다 가르친 역사’, ‘통일이냐 반통일이냐’, ‘민중교육 1.2’, ‘해방공동체 1.2.3.’, ‘교육현장’ 등의 이념서적을 탐독하고 우리나라의 현실에 대하여는 해방 이후 미군이 진주한 이래 이승만 정권을 비롯하여 박정희 등 군사정권을 통한 독점 자본화가 이루어지고 정치, 군사, 문화의 모든 분야에 있어 미국에 예속되기에 이르렀으며 미국과 매판자본가, 매판관료, 군부 등의 반민족적 집단이 근로자, 농민 등 민중을 착취하고 안보와 반공이라는 이름하에 민족의 통일을 가로막고 있으므로 외세를 배격하여 외국과의 의존 내지 종속관계를 청산하고 반민족적, 반민주적 세력과의 투쟁을 통하여 통일의 길을 앞당겨야 할 실정이라고 파악하는 한편 북한의 현실에 대하여는 정치적으로 독자성을 유지하고 있고 사회, 경제적으로는 거의 모든 분야가 발전되어 그 혜택이 주민들에게 골고루 돌아가고 주민들이 상당한 수준의 자유를 누리고 있으며 통일문제에 있어서도 무력 침략만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방법의 차이는 있지만 고려연방제의 제안 등 나름대로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실정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교육자인 피고인으로서는 학생들에게 이념이나 체제보다는 민족의 동질의식을 깨우치는 데 노력하여 시대적 과제인 통일교육의 실시에 주력하여야 한다고 나름대로 인식하고, 1987. 6. 26. 진주시 중앙로타리에서 군사독재 타도를 위한 군중시위, 1988. 11. 20. 서울 여의도 관장에서 개최된 전국교사협의회의 교육법개정 및 참교육 결의대회 및 1989. 5. 14. 청주시 ◯◯교회에서 개최된 전국교직원 노동조합 충북지부 결성대회에 각 참가하는 한편 B고등학교의 일본어 수업 중 학생들에게 위 ‘감자씨와 볍씨의 통일이야기’라는 서적을 읽어주거나 동 서적을 구입하여 읽어볼 것을 권유하는 등 소위 의식화교육을 해오던 자인바, 북한공산집단은 정부를 참칭하고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불법조직된 반국가단체로서 변증법적 유물사관에 입각한 역사발전의 법칙성과 계급투쟁론을 주장하면서 피착취계급인 노동자계급이 착취계급인 자본가계급을 타도하여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여야 한다는 이념하에 대남적화통일을 목표로 삼고 이러한 목표달성을 위하여, 한국사회는 미제국주의의 강점하에서 그들이 내세운 매판독점 자본가, 군부 반동정치인 및 매판관료 등을 통하여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철저히 미제국주의에 종속된 신 식민지로서 모든 인민이 수탈당하고 있다고 모략하면서 조국의 자주적 통일과 인민해방을 위하여는 한국에서 미제 침략자들과 군부파쇼정권을 폭력으로 타도하고 민족해방 인민 민주주의 혁명을 이룩하여야 한다는 전략하에 그들의 이른바 통일전선전술에 따라 노동자, 농민 등 피지배계급과 청년, 학생, 지식인, 도시 소부르조와 등 피지배계층을 광범위하게 연합하여 미제국주의와 군사 파쇼집단, 매판 자본가들을 폭력혁명으로 타도하여야 한다고 선전·선동하는 한편 소위 그들의 진보적 인텔리겐차의 혁명운동 동참론에 따라 한국의 청년, 학생, 지식인들은 사상과 이론으로 무장하여 노동자, 농민을 계급적으로 각성시키고 계몽함과 동시에 지도핵심을 중심으로 조직을 형성하여 역사의 주체인 노동자, 농민 등 인민대중과 조직적 유대를 강화하여 반미자유화와 반파쇼민주화투쟁을 전개, 미제국주의와 군사파쇼집단, 매판자본가의 무리를 축출하고 인민정권을 수립하여야 한다고 끊임없이 선동하고 있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1. 1989. 4. 11. 11:30경 충북 B고등학교 C반 교실에서 공소 외 D 등 학생 52명을 상대로 일본어 수업 중 ‘6·25는 당시 북한이 남침을 한 것이 아니고 미군이 먼저 북한을 침범하여 일어난 것이다’라고 교육함으로써 반국가단체인 북한공산집단의 주장에 동조하고,
2. 위 같은 달 25. 11:30경 같은 장소에서 위 D 등 학생 54명을 상대로 일본어 수업 중 북한의 자연경관, 평양시가 모습, 김일성 동상, 주체사상탑, 북한주민의 생활상, 각종 산업활동 등의 칼라사진 59장과 북에서는 누구나 원칙적으로 1일 8시간, 주 6일간 노동하고 교육과 의료는 국가가 부담하며 의식주도 국가로부터 제공되고 있어서 일생생활이 곤란하지 않다는 등의 설명이 수록된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출판의 '보고싶은 산하‘라는 제목의 화보집을 학생들에게 보여주면서 ’여러분은 북한이 못사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잘 살고 있다‘, ’북한 사람들은 6·25 사변 때 미국 공군의 극심한 폭격으로 폐허가 된 평양을 스스로의 힘으로 오늘날의 모습과 같이 재건한 사실에 대하여 커다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 사진과 같이 북한 사람은 옷도 잘 입고 높은 건물도 많아 학생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나쁜 곳이 아니다. 북한은 평화롭고 살기좋은 곳이다‘, ’북한에도 주말에는 낚시를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라는 등의 교육을 함으로써 반국가단체인 북한공산집단을 찬양, 고무한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