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고등법원 2025. 8. 28. 선고 2024재노5 판결 [소요, 특수공무집행방해]
판시사항
참조조문
참조판례
심판대상조문
판례내용
- 피고인
- A
- 재심청구인
- 피고인의 자녀 B
- 항소인
- 피고인 및 검사
- 검사
- 심성택(기소), 서창원(공판)
- 변호인
- 법무법인 향법담당변호사 심재환
- 재심대상판결
- 대구고등법원 1962. 7. 11. 선고 1962노78 판결
- 원심판결
- 대구지방법원 1962. 2. 24. 선고 61형공합192, 62형공합7(병합) 판결
- 판결선고
- 2025. 8. 28.
원심판결 중 피고인에 대한 부분을 파기한다. 피고인은 무죄. 이 판결의 요지를 공시한다.
1. 이 사건의 진행 경과
기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이 인정된다.
가. 피고인은 1961. 4. 26. 대구지방법원에 소요 및 특수공무방해 혐의로 기소되었다가, 1961. 8. 12. 특수범죄처벌에관한특별법위반의 공소사실로 공소장이 변경되었으며, 1961. 8. 25. 구 혁명재판소및혁명검찰부조직법(1961. 6. 21. 법률 제630호로 제정된 것, 이하 같다) 부칙 제3항의 규정에 따라 혁명재판소에 기소간주 되었다.
나. 혁명재판소는 위 사건을 심리하던 중 1961. 10. 5. 위 사건을 대구지방법원으로 이송하였고, 위 법원은 1962. 2. 24. 피고인에 대하여 재차 변경된 공소사실인 소요 및 특수공무집행방해죄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여 피고인을 징역 2년에 처하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다. 피고인과 검사는 위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를 제기하였는데, 항소심인 대구고등법원은 1962. 7. 11. 피고인의 항소를 받아들여 원심판결 중 피고인에 대한 부분을 파기하고 피고인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하는 내용의 판결(이하 ‘재심대상판결’이라 한다)을 선고하였으며, 재심대상판결은 1962. 7. 16. 피고인의 상소권 포기로 그대로 확정되었다.
라. 피고인의 딸인 C은 2024. 9. 3. 이 법원에 재심대상판결에 대하여 재심청구를 하였고, 이 법원은 2024. 12. 20. 재심개시결정을 하였다.
2. 항소이유의 요지
가. 피고인(사실오인 및 법리오해)
피고인에 대하여 수사과정에서 불법구금, 고문, 가혹행위 등의 위법이 가해져 검사가 제출한 증거는 모두 위법수집증거로 증거능력이 없고 진술의 임의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피고인의 법정에서의 진술 또한 수사기관의 불법행위를 통해 받은 심리적 억압 상태 하에서 임의성 없이 이루어진 것으로 증거능력이 없다. 따라서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피고인에 대하여 무죄가 선고되어야 함에도,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에는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
나. 검사(양형부당)
원심이 선고한 형(징역 2년)은 너무 가벼워서 부당하다.
3. 피고인의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 주장에 관한 판단
가. 공소사실의 요지
피고인은 30세에 D대학 3년을 수료하고 가사에 종사하던 자로서 1961. 3.경부터 E의 맹원으로서 조직부 책임을 맡고 있던 자이다. 피고인 등은 1961. 3.경 정부에서 기초하여 국회에 제출하려던 국가보안법 개정법 및 데모규제법의 2법안은 반공이라는 미명하에 야당 특히 혁신계 정당의 정치적 활동을 봉쇄하려는 의도가 보일 뿐 아니라 장차 그 방면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는 법률이라 속단하고 이를 국회에 제출 통과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 하에 동 양대 법안의 철회를 요구하는 대구시민대회를 개최할 것을 기도하고, 1961. 3. 31. 및 동년 4. 1. 양차에 걸쳐 대구시 동문동 소재 노동신문사 내에서 이른바 2대 악법반대 경북정당 사회단체 노동단체 학생단체 공동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 전시 시민대회의 일시 장소는 동년 4. 2. 17시부터 대구역전 광장에서 거행하기로 하고, 식순 및 동원 인원수 등을 결의한 후 동 대회의 집회 및 시위계를 행정관청에 제출하였던바 당국으로부터 당시 빈발하는 무질서한 난동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동 대회의 장소로서 대구시내 수송천변은 좋으나 역전광장의 사용은 불허한다는 이유로 전시집회 및 시위계가 반려되었고 동 역전광장의 사용을 강행할 때에는 공안유지상 철저히 이를 단속하겠다는 취지의 통고를 받자 동인 등은 경찰관의 충돌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동 집회와 시위를 역전광장에서 하기로 하고 대회참가군중은 일단 대구시 전동 소재 교원노동조합 사무실 앞의 소개지에 집합하여 역전광장으로 항하여 전진하기로 모의하고 그 취지를 상기 각 단체에 연락하여 동년 4. 2. 예정대로 전시 소개지에 약 100여명의 시위군중이 집합하여 드디어 동일 16시 30분경 역전 광장으로 향하여 동 지점을 출발하게 되었던바, F는 동일시경 동 데모대에 가담하여 공소 외 G 등과 같이 동 시위 군중을 선동하며 시위대의 선정용 지프차를 앞세우고 다중의 위력으로서 역전광장으로 향하여 전진하면서 “2대 악법은 살인법이다. 죽음으로서 막아내자”, “장정권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치는 데모군중의 선두에 서서 전진 중 동 데모대의 전진을 저지하려고 전동입구에 배치된 경찰관과 동 지점에서 충돌하자 F는 전시 지프차 위에 올라서서 경찰을 질책하고 경찰관과 서로 붙잡고 옥신각신하며 데모대원과 합세하여 폭력으로써 전시 경찰의 저지선을 동일 17시경에 돌파하고 계속 동 시위 행렬이 역전광장을 향하여 전진 중에 H, I, J, 피고인 등은 이에 가담하여 다시 합세한 수백 명의 시위군중과 같이 계속 역전광장으로 향하여 중앙 통을 전진 중 이를 저지하려고 북성로 입구에 배치된 약 200명의 경찰과 동 지점에서 서로 대치하였던바, H, I, J 등은 각 선두에 서서 일거에 동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려고 “반공이란 미명하에 다시는 안 속는다.”라고 쓴 플랜카드를 펴 들고 “악질경찰 물러가라”, “마산사건을 아느냐”, “너희들도 자동케이스 15년 감이다” 등의 구호를 외치는 시위군중과 합세하고, K은 마이크를 통하여 수삼차 질서회복을 호소하며 동 데모대의 즉시 해산을 요구하는 경북경찰국 경비과장 L에게 “저 새끼 잡아죽인다”고 협박을 가하고, J은 경비경관의 경찰봉을 빼앗으려고 서로 붙잡고 옥신각신하여 동 경찰봉을 부러지게 하여 이를 손괴하고, M, N 등은 경찰관을 주먹으로 구타하고 발로 차는 등 폭행을 자행하여서 피고인 등은 동 지역 일대의 정밀을 해하여 소요하고 다중의 위력으로 경찰관의 정당한 공무집행을 방해하였다.
나. 이 사건의 판단자료 및 방법
재심개시결정이 확정된 사건에 대하여 법원은 그 심급에 따라 다시 심판을 하여야 하는바(형사소송법 제438조 제1항), 다시 심판한다는 것의 의미는 재심대상판결의 당부를 심사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 자체를 처음부터 새로 심판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당연히 재심대상판결의 기초가 된 증거들 및 그 이후에 수집된 증거들을 모두 종합하여 이 사건 공소사실에 대한 판단을 하여야 한다. 그런데 이 사건의 경우, 이 법원이 국가기록원과 대구지방검찰청 등에 기록의 송부 및 보존 여부의 확인을 요청한 결과 이 사건 수사기록 및 재판기록이 그 어디에도 보존되어 있지 아니하여 이 법원이 이 사건을 판단함에 있어 이 사건의 수사기록 및 재판기록을 검토할 수는 없다. 한편 재심대상 사건의 기록이 보존기간의 만료로 이미 폐기되었다 하더라도 가능한 노력을 다하여 그 기록을 복구하여야 하고, 부득이 기록의 완전한 복구가 불가능한 경우에는 판결서 등 수집한 잔존자료에 의하여 알 수 있는 원판결의 증거들과 재심공판절차에서 새롭게 제출된 증거들의 증거가치를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04. 9. 24. 선고 2004도2154 판결 등 참조). 따라서 이 사건에서는 지금 단계에서 최대한 확보할 수 있는 자료인 이 사건 재심대상사건의 판결문 사본,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자료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항소이유 주장에 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다. 원심의 판단
원심은, 피고인에 대한 판시 범행의 수단, 방법에 관한 사실은 ① 피고인의 원심 법정에서의 판시 데모대에 가담하였다는 진술, ② 혁명재판소의 피고인에 대한 증인신문조서 및 원심 제1회 공판조서 중 판시 데모대에 가담하였다는 각 진술 기재, ③ 기록에 편철된 사진 1매 중 판시 관계 부분에 부합하는 영상 내용을 종합하여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였다.
라. 당심의 판단
1) 관련 법리
임의성 없는 진술의 증거능력을 부정하는 취지는, 허위진술을 유발 또는 강요할 위험성이 있는 상태 하에서 행하여진 진술은 그 자체가 실체적 진실에 부합하지 아니하여 오판을 일으킬 소지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진위를 떠나서 진술자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는 위법·부당한 압박이 가하여지는 것을 사전에 막기 위한 것이므로, 그 임의성에 다툼이 있을 때에는 그 임의성을 의심할 만한 합리적이고 구체적인 사실을 피고인이 증명할 것이 아니고 검사가 그 임의성의 의문점을 없애는 증명을 해야 하고, 검사가 그 임의성의 의문점을 없애는 증명을 하지 못한 경우에는 그 진술증거는 증거능력이 부정된다. 나아가 피고인이 경찰에서 가혹행위 등으로 인하여 임의성 없는 자백을 하고 그 후 검찰이나 법정에서도 임의성 없는 심리상태가 계속되어 동일한 내용의 자백을 했다면 각 자백도 임의성 없는 자백이라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2015. 9. 10. 선고 2012도9879 판결 등 참조).
2) 구체적 판단
가) 형사재판에서 공소가 제기된 범죄의 구성요건을 이루는 사실은 검사에게 증명책임이 있다. 그러나 검사는 재심개시결정 이후 이 법원에 공소사실을 증명할 증거를 제출하지 아니하고, 피고인에 대해 무죄를 구형하였다.
나) 과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포함한 이 사건 기록에 따르면, 피고인은 1961. 4. 2. 구속되어 1961. 4. 26. 기소된 후 1962. 2. 24. 원심 법원에서 징역 2년 및 미결구금일수 325일 산입을 선고받은 사실이 인정된다. 피고인이 구속될 당시의 구 헌법(1962. 12. 26. 헌법 제6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9조는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 구금, 수색, 심문, 처벌과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 체포, 구금, 수색에는 법관의 영장이 있어야 한다. 단, 범죄의 현행범인의 도피 또는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을 때에는 수사기관은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사후에 영장의 교부를 청구할 수 있다. 누구든지 체포, 구금을 받은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와 그 당부의 심사를 법원에 청구할 권리가 보장된다.”고 규정하여, 국민의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었다. 또한 피고인의 구속 당시 시행 중이던 구 형사소송법(1961. 9. 1. 법률 제705호로 개정된 것, 이하 같다) 제92조는 구속기간은 2월로 하고 특히 계속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심급마다 2월씩 2차에 한하여 결정으로 갱신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 한편, 공소제기 전의 체포‧구인‧구금된 기간도 위 기간에 산입하였다. 즉 피고인에 대하여 1심에서 최대로 구속할 수 있는 기간은 6개월이었고, 적법절차의 원칙 및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 헌법 정신에 비추어 볼 때, 법원에 기소되었다가 혁명재판소에 기소간주 된 사건이 다시 법원으로 이송된 경우에도 그 구속기간에 관해서는 여전히 구 형사소송법상 1심의 구속기간이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다.[1]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본 것처럼 피고인이 1961. 4. 2. 체포된 날로부터 6개월 이상 경과한 1962. 2. 24. 제1심 판결이 선고되었으므로, 구 형사소송법이 정한 6개월 보다 146일을 초과하여 피고인을 구금한 것은 불법구금에 해당한다. 위와 같이 피고인에 대한 부당한 신체구속이 장기화된 상태에서 이루어진 피고인의 법정에서의 자백 진술은 임의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된다.
다) 나아가 소요의 점과 관련하여 형법 제115조의 소요죄는 다중이 집합하여 폭행·협박 또는 손괴의 행위를 한 경우에 성립하는 범죄로서 소요죄의 구성요건적 행위로서의 폭행, 협박, 손괴는 한 지방에 있어서의 공공의 평화, 평온, 안전을 해할 수 있는 정도의 것이어야 하는데, 이 법원에 새롭게 제출된 자료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아래와 같은 이 사건 시위의 목적과 배경, 시위대의 인원과 경찰병력의 인원, 이 사건 시위의 방법, 이 사건 시위의 경과 등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을 포함한 시위대가 행한 폭행, 협박, 손괴 등이 한 지방에 있어서의 공공의 평화, 평온, 안전을 해할 수 있는 정도의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① 이승만 자유당정권이 붕괴된 후 개헌을 통하여 새롭게 집권하게 된 장면의 민주당 정권은 국민들의 민주화와 민생에 대한 요구가 집회와 시위를 통하여 연일 계속되자 이를 통제하기 위하여 1961. 3. 초순경부터 2대 법안의 제정을 시도하였다. 이와 같은 시도가 알려지자 민족일보, 동아일보,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 주요 중앙 일간지 등은 각 논설을 통하여 민주당이 제안한 2대 법안은 반공을 빙자하여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탄압할 저의가 있다며 위 2대 법안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였다. 사회당, 사회대중당 등 혁신계 정당과 피학살자유족회 민주민족청년동맹, 학생단체 등 사회단체들은 ‘2대 악법 반대 범국민투쟁위원회’를 공동으로 결성하여 정부가 발의한 2대 법안 반대투쟁에 돌입하였다. 김병로 전 대법원장도 ‘현행 형법과 국가보안법으로도 모든 것을 다스리는 데 충분하다’고 반대의사를 표명하였고, 서울과 지방에서 개최되었던 2대 법안 반대운동에는 연일 수 만 명의 사람들이 참가하였으며, 대학생들은 ‘2대 법안 반대 학생투쟁위원회’를 구성하여 독자적으로 반대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사건 시위는 위와 같은 정치적·사회적 배경 속에서 이루어진 것으로서 이 사건 시위가 있었던 대구 지역의 시민들도 대부분 앞서 본 바와 같은 언론보도 등을 통하여 이 사건 시위의 목적, 배경 등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심지어 민주당의 일부 국회의원과 보수계에서도 위 2대 법안을 반대하기에 이르러 결국 장면정부는 위 2대 법안을 철회함으로써 위 2대 법안은 국회에서 통과하지 못하고 폐기된 점에 비추어 보면, 당시 여론의 향방은 위 2대 법안 제정에 반대하는 입장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② 이 사건은 100여 명의 시위대가 대구시 전동 소재 교원노동조합 사무실 앞에서 집합하여 대회장소인 역전광장으로 이동하는 과정에 이를 저지하려는 200여 명의 경찰병력과 충돌하여 발생한 것이고, 그 밖의 시위 군중들은 시위대의 주장에 동조하여 자발적으로 참여한 시민들이다. ③ 이 사건 시위는 시위대가 대구시 전동 소재 교원노동조합 사무실 앞에서 집합하여 대회장소인 역전광장으로 행진하면서 구호를 외치는 정도의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경찰이 대회장소인 역전광장으로 이동하려는 시위대를 저지함으로써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있기는 하였으나, 그것은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대회장소인 역전광장으로 가려는 시위대와 이를 저지하려는 경찰 사이의 몸싸움 정도에 불과하였고, 시위대가 도구 등을 이용하여 경찰 저지선을 돌파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2대 법안을 반대하는 것은 당시 정부의 태도와는 반대되는 입장이나 이 정도의 공적인 비판은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에 의하여 보호되는 범위 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④ 이 사건 시위대의 행진은 경찰봉 등을 갖춘 진압경찰에 가로막혀 결국 해산하였고, 당초 계획한 역전광장에서의 집회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라) 또한 특수공무집행방해의 점과 관련하여, 공동정범으로서의 책임을 묻기 위하여는 주관적 요건으로서 공동가공의 의사와 객관적 요건으로서 공동의사에 의한 기능적 행위지배를 통한 범죄의 실행 사실이 필요한데, 주관적 요건으로서의 공동가공의 의사는 타인의 범행을 인식하면서도 이를 저지하지 아니하고 용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공동의 의사로 특정한 범죄행위를 하기 위하여 일체가 되어 서로 다른 사람의 행위를 이용하여 자기의 의사를 실행에 옮기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것이어야 한다(대법원 2008. 1. 17. 선고 2007도7528 판결 등 참조). 이 법원에 새롭게 제출된 자료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이 단순한 시위를 넘어 이 사건과 같은 폭력행위가 발생할 것을 미리 예견할 수는 없었던 것으로 보이고, 피고인이 직접 폭력행위에 가담하였다는 구체적인 증거도 없다. ① 이 사건 공소사실 자체에 의하더라도, 피고인이 이 사건 시위에 참가하여 시가지를 행진하였다는 것 외에 어떠한 폭력행위에 가담하였는지에 대해 구체적 행위 내용이 특정되어 있지 않고, 피고인이 이 사건 시위를 결의한 대구시 동문동 소재 노동신문사 내에서의 집회에 참석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할 만한 증거도 없다. ② 그 밖에 원심이 그 증거로 열거하고 있는 사진은 현재 기록이 폐기되어 그 영상 내용을 알 수 없다(그 영상이 이 사건 시위대의 전체적인 시위양상 등을 넘어 피고인의 구체적인 행위를 촬영한 것은 아닐 것으로 추측된다).
마) 결국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은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의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한다.
4. 결론
그렇다면 피고인의 항소는 이유 있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4조 제6항에 의하여 검사의 양형부당 주장에 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 중 피고인에 대한 부분을 파기하고 변론을 거쳐 다시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파기 부분에 대하여 다시 쓰는 판결이유]
1. 이 부분 공소사실의 요지
제3의 가항 공소사실의 요지 기재와 같다.
2. 판단
제3의 라항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부분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따라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형사소송법 제440조에 따라 이 판결의 요지를 공시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