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지방법원 2026. 5. 8. 선고 2025고단3872 판결 [도로교통법위반(사고후미조치)]
판시사항
참조조문
참조판례
심판대상조문
판례내용
- 피고인
- A
- 검사
- 오광일(기소), 진유진(공판)
- 변호인
- 변호사 임영주(국선)
- 판결선고
- 2026. 5. 8.
피고인은 무죄.
1. 공소사실의 요지
피고인은 (차량번호 생략) 니로 승용차의 운전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피고인은 2024. 8. 9. 19:25경 위 차량을 운전하여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에 있는 경부고속도로 부산방향 399㎞ 부근 도로를 편도 5차로 중 4차로를 따라 알 수 없는 속도로 진행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우 자동차의 운전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는 그 차의 조향 및 제동장치, 그 밖의 장치를 정확히 조작하여야 하고, 도로의 교통상황을 잘 보고 안전하게 운전하여 사고를 미리 방지하여야 할 업무상의 주의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은 이를 게을리 한 채 그대로 진행한 과실로 마침 전방 4차로에서 차량 정체로 서행하고 있던 피해자 B(남, 51세) 운전의 (차량번호 생략) 미니쿠퍼 승용차의 뒤 범퍼 부위를 위 차량 앞 범퍼 부위로 들이받아 피해자의 승용차를 수리비 2,524,500원이 들도록 손괴하고도 피해자에게 인적사항을 제공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도주하였다.
2. 인정사실
이 법원이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에 의하면 아래 사실이 인정된다.
가. 피고인은 2019. 6. 29. C병원에서 ‘난치성 뇌전증을 동반하지 않은 상세불명의 뇌전증’으로 건강보험 요양급여를 받았다.
나. 이후 피고인은 4개월에 한 번 정도 C병원에서 뇌전증 진료를 받고 처방받은 약을 복용하면서 의사에게 운전면허 취득이 언제 가능한지 물었고, 의사는 2년간 뇌전증 증상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때 가능하다는 취지로 답변하였다.1)
다. C병원 의사 D은 2023. 10. 27. 피고인에게 “상기 환자(피고인) 뇌전증으로 아주대병원 신경과 진료 중으로, 항경련제 투약하며 2년 이상 경련 없었음. 올해 시행한 뇌파는 이전보다 호전된 소견임. 이에 운전면허 취득 및 운전 가능하다 판단됨.”이라는 내용의 진단서를 발급해주었고, 피고인은 2024. 3. 6. 자동차운전면허(2종 보통)를 취득하였다.
라. 피고인은 2024. 3. 13. (차량번호 생략) 니로 하이브리드 승용차(이하 ‘이 사건 니로’라 한다)를 구입하여 취득하였고, E화재보험 주식회사와 이 사건 니로에 관해 보험기간을 2024. 3. 13.부터 2025. 3. 13. 24:00까지, 기명피보험자를 피고인, 담보종목을 대인배상Ⅰ, 대인배상Ⅱ(1인당 무한), 대물배상(1사고당 10억 원 한도) 등으로 하는 자동차보험계약을 체결하였다.
마. 피고인은 2024. 8. 9. 19:25경 이 사건 니로를 운전하여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에 있는 경부고속도로 부산방향 399㎞ 부근 편도 5차로 도로 중 4차로를 따라 진행하다가 바로 앞에서 서행하던 B이 운전하는 (차량번호 생략) 미니쿠퍼 승용차(이하 ‘이 사건 미니쿠퍼’라 한다)의 뒤 범퍼 부분을 이 사건 니로의 앞 범퍼 부분으로 들이받았다(이하 ‘이 사건 사고’라 한다).
바. 그 후 피고인은 진행차로를 3차로로 변경하여 진행하여갔고, B은 오른쪽 갓길에 이 사건 미니쿠퍼를 세운 다음 집으로 가면서 112신고를 하였다.
사. B은 2024. 8. 9. 21:40경 용인동부경찰서 교통조사계에서 이 사건 사고에 관한 ‘교통사고 발생상황 진술서’(이하 ‘이 사건 진술서’라 한다)를 작성하였는데, 그 진술서에 사고발생시각을 “2024. 8. 9. 18:45경”, 사고내용을 “경부고속도로에서 퇴근하는 차안에서 후방 충격으로 교통사고 인지했다. 뒤에서 받고 브레이크를 밟았는데도 뒤차가 쭉 밀었다. 50m 정도 밀린 것 같고, 멈춘 후 상황을 확인하는 사이 뒤에서 받은 차량이 도주했다.”라고 적었다. 위 사고발생시각은 이 사건 미니쿠퍼에 장착되어 있던 블랙박스에 표시된 이 사건 사고 발생시각을 적은 것인데, 위 블랙박스는 시간이 실제보다 40분가량 느리게 설정되어 있어서 실제 이 사건 사고 발생시각은 2024. 8. 9. 19:25경이다.
아. 고속도로순찰대 교통조사팀 소속 경찰공무원은 2024. 8. 10. 09:30경 피고인에게 전화를 걸어 ‘2024. 8. 9. 18:45경 이 사건 사고를 낸 사실이 있는지’ 물었고, 피고인은 사고시각에 관해 의문을 제기하며 이 사건 사고를 낸 사실이 없다는 취지로 답변하였다. 그 후 위 경찰공무원과 피고인이 2024. 8. 10. 카카오톡 문자메시지로 나눈 대화의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 발신시각 | 발신자 | 내용 |
|---|---|---|
| 10:09경 | 경찰공무원 | (이 사건 사고 발생 당시 근처에 있던 도로공사 순찰차량의 블랙박 스에 촬영된 이 사건 니로의 사진을 보내면서) 이 차 맞나요. |
| 10:10경 | 피고인 | 제 차 맞는데요. 이게 6시 45분이라고요? |
| 10:11경 | 경찰공무원 | (이 사건 진술서를 촬영한 사진과 이 사건 미니쿠퍼의 뒤 범퍼 쪽을 촬영한 사진을 보냄) |
| 10:15경 | 피고인 | 제가 차를 밀었다고요? |
| 10:15경 | 경찰공무원 | 후미충격 |
| 10:16경 | 피고인 | 6시 45분이 아니라 7시 36분이죠? |
| 10:16경 | 경찰공무원 | 사고는 기억나시나요. |
| 10:17경 | 피고인 | 50m를 밀었는데 그냥 갈 리가 있나요. |
| 10:19경 | 경찰공무원 | 이 사고는 뺑소니 사고라 분당경찰서로 이첩할 겁니다. |
| 10:20경 | 피고인 | 아니 6시 45분인데 저 시간에 차 안 끌었다구요. |
3. 판단
가. 도로교통법 제148조에 의하여 처벌되는 도로교통법 제54조 제1항 위반죄는 사람의 사상, 물건의 손괴가 있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있을 것을 필요로 하는 고의범이므로(대법원 2017. 9. 7. 선고 2017도9689 판결 참조), 피고인에게 위 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피고인이 이 사건 사고 발생 사실을 인식하였음에도 도로교통법 제54조 제1항에 따른 교통사고 발생 시의 조치를 하지 아니하였어야 한다.
나. 살피건대, 앞서 인정한 사실 및 이 법원이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로부터 알 수 있는 아래 사정들을 종합하면 피고인은 이 사건 니로를 운전하던 중 뇌전증으로 인해 의식이 소실된 상태로 이 사건 사고를 냈고, 그 후 의식이 돌아왔을 때 이 사건 사고 발생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진행차로를 3차로로 변경하여 진행하였을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
1) 피고인은 이 사건 사고 발생 다음 날인 2024. 8. 10. 경찰공무원과 앞서 본 카카오톡 대화를 할 당시부터 그 후 경찰조사를 거쳐 이 법정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이 사건 사고 발생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고, 이 사건 사고 발생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앞에 이 사건 미니쿠퍼가 서있기에 길이 막힌다고 생각하고 진행차로를 3차로로 변경하여 진행하여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피고인이 오랫동안 뇌전증을 앓고 있는 사실은 앞서 본 것과 같고, F병원 의사 G가 작성한 2025. 10. 21.자 소견서에는 “이 환자(피고인)의 경련 양상은 두 가지이다. / 1. 수면 중 강직간대경련(전신 경련), 2. 전조 이후 주변 인지가 안 되면서 기억을 잃는 복합부분발작 / 2번 증상의 경우 일시적(환자 기술 근거 – 1분 이내)으로 기억을 잃고 본인이 인지하지 못하는 행동을 할 수 있다. / 현재 충실히 약물 복용하는데도 증상이 지속되어 약물 조정 중에 있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2) B은 이 사건 진술서에 이 사건 사고 발생 후 이 사건 니로가 이 사건 미니쿠퍼를 50m가량 밀고 갔다고 기재하였고, 2025. 2. 22. 경찰에서 참고인조사를 받으면서는 그와 같이 밀려간 거리가 30m가량이라고 진술하였다. 이처럼 피고인이 이 사건 사고를 낸 후 즉시 정차하지 아니하고 이 사건 미니쿠퍼를 밀면서 30 내지 50m가량 진행하였다는 사실은 피고인이 당시 의식 소실 상태에 있었을 가능성을 방증한다.
3) 이 사건 미니쿠퍼의 블랙박스 시간을 기준으로 이 사건 사고 발생시각은 18:45:32경이고, 피고인이 이 사건 니로의 진행차로를 3차로로 변경하여 진행하여간 시각은 18:46:43경으로, 그 사이에 1분 10초가량의 시간간격이 있다.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교통사고를 내고 그로 인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우 교통사고 발생 즉시 도주하는 것이 일반적인바, 위와 같은 시간간격은 이 사건 사고 발생 사실을 인식하고 도주하는 사람의 행동으로 보기 어렵다.
4) 이 사건 사고 발생 후 이 사건 미니쿠퍼의 상태는 뒤 범퍼 부분이 긁히고 찌그러진 정도였던바, 피고인이 이 사건 사고 발생 후 앞에 서있던 이 사건 미니쿠퍼의 상태를 보고 이 사건 사고 발생 사실을 인식하였으리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5) 이 사건 사고 발생 당시는 한여름의 저녁시간대로 아직 주위가 밝았고, 날씨가 맑았으며, 주위에 통행하는 차량들이 많았다. 피고인은 앞서 본 것과 같이 뇌전증으로 인해 어렵게 자동차운전면허를 취득하였고, 이 사건 니로에 관해 이른바 ‘종합보험’에 가입하였으며, 이 사건 사고 발생시각과 피고인이 당시 회사업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길이었던 점을 볼 때 술을 마신 상태였다고 볼 만한 정황도 없다. 이 사건 사고는 중대한 인적·물적 피해가 발생할 정도가 아니었고(B과 이 사건 미니쿠퍼의 동승자인 H는 각 이 사건 사고 발생 다음 날인 2024. 8. 10. I한의원에서 경추의 염좌 및 긴장 등으로 약 2주간의 치료를 요한다는 내용의 진단서를 발급받았다), 피고인은 아무런 형사처벌 전력이 없다. 이와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면 피고인이 이 사건 사고 발생 사실을 인식하고도 도주할 동기나 이유를 찾기 어렵다.
6) 2024. 8. 14.자 입건전조사보고서(이송사유 등)에는 “도로공사 순찰차량 블랙박스에 찍혀있는 피조사차량 소유자 피고인에게 연락하여 사고내용을 설명하고 왜 사고가 났었는지 확인했으나 자신은 운전한 사실이 없고 또 자신의 차량은 고속도로에서 운행하지도 않고 집에 그대로 주차되어 있다고 진술하고 있지만, 나중에 다시 연락이 와서 ‘피해자가 누구냐. 연락처를 알 수 있느냐.’ 하는 것으로 보아 피고인이 운전한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그러나 피고인이 ① 자신이 운전한 사실이 없다고 진술하였다는 부분은 앞서 본 것과 같이 최초 B의 진술에 따라 이 사건 사고 발생시각이 2024. 8. 9. 18:45경으로 특정되었기 때문으로 보이고(피고인은 경찰에서 피의자신문을 받으면서 2024. 8. 9. 19시경 회사에서 퇴근해서 집으로 가던 중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하였다고 진술하였다), ② 자신의 차량이 고속도로에서 운행하지도 않고 집에 그대로 주차되어 있다고 진술하였다는 부분은 앞서 본 피고인과 경찰공무원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에 비추어 피고인의 진술을 정확하게 기재한 것인지 의문스러울 뿐 아니라, 가사 피고인이 위와 같은 진술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만으로 피고인 진술의 전체적인 신빙성이 감쇄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7) 이 사건 니로에는 블랙박스가 장착되어 있으나[자동차보험가입증명서(증거기록 34쪽)의 ‘보험료 할인특약’란에 “영상기록장치(블랙박스)할인특약”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경찰은 이 사건 사고 발생 후 6개월가량 지난 2025. 2.에야 B에 대한 참고인조사와 피고인에 대한 피의자신문을 실시하였고, 피고인은 그 피의자신문을 받으면서 이 사건 사고 발생 당시의 블랙박스 영상이 시간이 지나 자동으로 삭제되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바, 달리 피고인이 이 사건 사고 발생 당시의 블랙박스 영상을 고의로 삭제하였다고 볼 만한 아무런 증거가 없다.
4. 결론
그렇다면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하여 무죄를 선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