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지방법원 2011. 9. 21. 선고 2009나2961 판결 [손해배상(기)]
판시사항
참조조문
참조판례
심판대상조문
판례내용
- 원고, 항소인
- 이00 (63년생),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이인, 담당변호사 김경진
- 피고, 피항소인
- 대한민국, 법률상 대표자 법무부장관 권재진, 소송수행자 김●●
- 제1심판결
-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 2009. 2. 6. 선고 2008가단6193 판결
- 변론종결
- 2011. 9. 2.
- 판결선고
- 2011. 9. 21.
1. 당심에서 확장된 원고의 청구를 포함하여 제1심 판결의 주문 제1, 2항을 아래와 같이 변경한다.
가. 피고는 원고에게 3억 원 및 이에 대하여 2011. 9. 3.부터 2011. 9. 21.까지는 연 5%,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나. 원고의 나머지 청구를 기각한다.
2. 소송총비용 중 1/3은 원고가, 2/3는 피고가 각 부담한다.
3. 제1의 가.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
제1심 판결을 취소한다. 피고는 원고에게 5억 원 및 이에 대하여 항소심 변론종결일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20%의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원고는 당심에서 재산상 손해배상 청구 부분은 소를 취하하고, 위자료 청구 부분은 청구취지를 확장하였으며, 위 위자료에 대한 지연손해금 청구 부분은 청구취지를 감축하였다).
1. 기초사실
가. 원고에 대한 수사 및 기소
(1) 원고는 1982. 4. 22. 해병대에 입대하여 해군 제1해병사단 0연대 0대대 소속 소총수로 복무하다가 1984. 9. 28.자 인사명령에 의하여 1984. 10. 22. 전역을 앞두고 있었는데, 전역을 1주일 앞 둔 1984. 10. 15.경 피고 산하 국군 보안사령부(현 기무사령부, 이하 보안사라 한다.) 소속 군인들에 의하여 보안사 진양분실로 연행·구금되어 국가보안법위반 및 군사기밀누설 등의 혐의에 대한 조사를 받았다.
(2) 원고는 1984. 11. 2.경 보안사로부터 국군 제000 보안부대로 인계되어 그 다음날인 1984. 11. 3. 원고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었고, 그 무렵 수사를 거쳐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찬양·고무·동조하여 이롭게 하고, 군사기밀을 누설'하였다는 공소사실로 해군 제1해병사단 보통군법회의에 기소되었다.
나. 유죄판결의 확정 및 형의 집행
원고는 1984. 12. 21. 위 보통군법회의에서 국가보안법위반죄(당시의 국가보안법 제7조 제1항 위반) 및 군사기밀누설죄(당시의 군형법 제80조 제1항 위반)로 징역 2년 및 자격정지 2년에 처하는 유죄판결을 선고받았으나, 같은 해 12. 27. 관할관 확인조치에 의해 위 형이 징역 1년 및 자격정지 1년으로 감경되었고, 위 판결(이하,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이라 한다.)은 원고의 항소포기로 1984. 12. 31.경 확정되었다. 이후 원고는 이등병으로 강등되어 육군교도소에서 복역하다가 1985. 11. 7. 위 징역형의 집행을 마쳤고, 그 직후부터 다시 군에 복무하다가 1985. 11. 21. 비로소 전역하였다.
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결과 및 재심판결
(1)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2005. 5. 27. 민·군 합동으로 발족한 국방부 산하 기구, 이하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라고 한다)는 2006. 7. 13. 강제징집·녹화사업에 대한 진상조사결과를 발표하였는데, 그 중 원고에 대한 주요내용은 '이미 전역하여 민간인 신분이던 원고를 군 수사기관이 구금하여 군법회의를 받게 함으로써 원고의 권리를 침해하였고, 원고가 수사기관에서 범행을 자백한 진술도 그 임의성과 진위 여부에 의심이 간다.'는 취지이다.
(2) 원고는 위 진상조사결과 등을 토대로 이 법원 2009재고단6호로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에 대하여 재심을 청구하여, 2011. 8. 9. 이 법원으로부터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이 유죄의 증거로 채택한 증거 중, 원고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 등은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고문 등에 의하여 강제로 자백한 것이어서 증거능력이 없고, 참고인 김□□ 등에 대한 진술조서 등도 적법한 절차에 따라 작성되지 않아 증거능력이 없으며, 나머지 증거들만으로는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죄판결을 선고받았으며, 한편, 위 무죄판결에 대하여 검찰이 항소하여 위 사건은 현재 항소심 계속 중이다.
[인정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내지 14호증(각 가지번호 포함)의 각 기재, 제1심 법원의 원고 본인신문결과, 변론 전체의 취지
2. 손해배상책임의발생
가. 인정사실
앞에서 든 증거들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이 추가로 인정된다.
(1) 원고는 1984. 10. 15.경 체포영장이나 구속영장 없이 범죄사실의 요지 및 변호인 선임권 등을 고지 받지 못한 채 보안사 소속 군인들에 의하여 강제 연행된 후 1984. 11. 2.까지 18일 동안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성명불상의 군인들로부터 조사를 받았는데, 위 조사자들은 당시 보안사 대공처로부터 '원고를 기소하는 쪽으로 하라'는 지침을 받은 상태였다.
(2) 원고는 위와 같이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조사를 받으면서, 발이 묶여 거꾸로 매달린 채 발바닥부터 온 몸을 구타당하고, 가족과 약혼녀에 대한 위해(危害) 협박은 물론 잠을 재우지 않는 등 극심한 고문을 당하다가, 결국 이를 견디지 못하고 조사자들이 요구하는 대로 진술서를 써주는 등 범죄사실을 허위로 자백하였다.
(3) 보안사 소속 군인들은 또, 참고인 김00를 불법 구금, 고문하여 원고에게 불리한 내용의 진술을 강요하고, 같은 부대에 복무하던 김□□, 심□□ 등 군인을 불러 미리 짜 맞추어 놓은 내용대로 유도하여 진술서를 작성하게 하였다. 나아가 위 조사자들은, 자신들은 수사권이 없음에도 수사권이 있는 군 사법경찰관의 도장을 미리 준비하여 두고 그들의 명의를 도용하여 원고 및 참고인들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와 진술조서를 작성하기도 하였다.
(4) 한편, 원고는 1984. 10. 22. 전역하여 군인의 신분을 상실하였으므로 원고에 대한 사건은 민간 수사기관에 송치되어 일반 법원에서 재판받아야 함에도, 전역일이 경과된 후인 1984. 10. 23. 원고에 대하여 전역취소명령이 내려졌고(그러나 위 전역취소명령은 군인 신분을 상실한 민간인에 대한 것이어서 당연 무효이다.), 이에 따라 원고는 '형식상' 군인으로서 위와 같이 보안사, 국군 보안부대의 조사를 거쳐 군법회의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다.
(5) 원고에 대한 재판은 당초 공개재판이 예정되었으나 갑자기 비공개재판으로 진행되었고, 원고에 대한 접견이 제한되고 군법회의에서 의무장교가 원고의 국선변호를 담당하는 등 재판과정에서도 원고의 권리침해는 구제되지 못하였으며, 이에 따라 원고는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을 선고받고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항소를 포기하였다.
(6) 원고는 전역을 앞두고 이 사건이 발생하여 수감됨으로써 약혼자로부터 파혼을 당하였고, 전역을 한 후에도 간첩이라는 오명을 쓰고 오랫동안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채 생활해 오다가, 현재는 순천지역의 시민운동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나. 판 단
우리 헌법은 제10조에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짐을 확인하면서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제12조 제1항에서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고 천명함과 아울러 제12조 제2항에서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나아가 법관이 발부한 영장에 의한 체포·구속(제12조 제3항),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제12조 제4항), 구속이유의 고지(제12조 제5항), 자백의 증거능력제한(제12조 제7항) 등을 규정함으로써 신체의 자유 및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또한 우리 헌법 제27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제2항은 '군인 또는 군무원이 아닌 국민은 대한민국의 영역 안에서는 중대한 군사상 기밀·초병·초소·유독음식물공급·포로·군용물에 관한 죄 중 법률이 정한 경우와 비상계엄이 선포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군사법원의 재판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일반국민이 원칙적으로 군사재판을 받지 아니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따라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할 의무를 지는 피고는, 수사와 재판을 포함한 형사소추의 전 과정에서 자백을 받아낼 목적으로 피의자나 피고인을 고문·회유·협박하는 등 위법을 자행해서는 안 될 것임은 물론 예외적인 사정없이 일반국민에 대하여 군사재판을 하지 않아야 할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사건의 경우 앞에서 본 기초사실 및 인정사실에 의하면, 피고 산하 보안사 소속 군인 등 공무원들은 ① 원고를 영장도 없이 강제 연행하여 불법 구금하는 등 체포 및 구속에 있어 적법절차를 지키지 아니하였고, ② 고문·폭행·협박 등 가혹행위를 통하여 원고로부터 공소사실을 인정하는 허위의 자백을 받아내고, 김□□ 등 참고인으로부터는 허위의 진술(보강증거)을 받아내는 방법으로 증거를 조작하여 결국 원고가 유죄판결을 선고받고 복역하도록 하였으며, ③ 나아가 원고가 1984. 10. 22. 자로 전역하여 군부대 및 군법회의에는 더 이상 원고에 대한 수사권과 재판권이 없음에도, 1984. 10. 23.자로 원고에 대한 전역명령을 취소한 후 원고를 계속 군부대에서 수사하여 결국 군법회의에서 비공개재판을 받도록 하였는바, 이러한 일련의 행위를 살펴보면 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지니는 국가가 오히려 가해자가 되어 원고에 대하여 위헌적 불법행위를 저질렀음이 명백하다.
따라서 피고는 원고에게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 따라 위와 같은 일련의 불법행위들로 인하여 원고가 입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
3. 소멸시효항변에관한판단
가. 당사자들의 주장
피고는, 국가배상법 제2조 소정의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은 국가재정법 제96조에 따라 5년의 기간 동안 이를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소멸하는데, 이 사건 소는 불법행위의 종료일, 즉 원고가 최종 전역한 1985. 11. 21.로부터 5년의 소멸시효 기간이 경과된 후에 제기되었으므로, 원고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이미 시효로 소멸하였다고 항변한다.
이에 대하여 원고는, 원고에 대한 유죄판결의 효력이 유지되고 있는 한 피고에 대하여 이 사건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객관적인 장애가 있었으므로 피고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거나 권리남용에 해당하여 허용되어서는 안된다고 재항변한다.
나. 판 단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의 행사도 우리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한 경우,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한 경우,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던 경우, 또는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한 경우, 채권자를 보호할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채권자들 중 일부가 이미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등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대법원 2008. 5. 29. 선고 2004다33469 판결 등 참조).
이 사건의 경우, 위 인정사실로부터 알 수 있거나 추론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 즉, ① 원고는 보안사 소속 군인들에게 적법한 체포·구금절차 없이 강제 연행되어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고문 등 가혹행위를 당하였고, 이로 인한 불안 심리상태는 군 검찰의 수사과정과 군법회의는 물론, 원고가 형의 집행을 마치고 군에서 전역한 후에도 간첩의 오명을 쓰고 각종 사회적 제약과 차별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지속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점, ② 원고는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결과가 발표된 후에야 비로소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에 대하여 재심을 청구하였는데, 위 조사에 의하여 비로소 조사자들의 불법행위가 어느 정도 밝혀져 그 결과 원고에 대한 무죄판결이 최근 선고되기에 이른 점, ③ 수사기관 종사자들의 고문 등 가혹행위는 국가시설 안에서 그 공무원으로서의 직무집행의 외관을 가지고 이루어졌고, 이후의 수사 및 재판과정에서 유죄의 확정판결을 선고 받은 원고로서는, 재심을 통해 그 주장이 받아들여져 무죄판결을 선고받기 전에는 과거의 유죄 확정판결이 고문과 증거 조작에 의하여 잘못된 것임을 전제로 국가를 상대로 그와 같은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를 제기한다는 것은 합리적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점 등의 사정을 모두 종합해 보면, 결국 아무리 빨라도 원고에 대하여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발표가 이루어진 2006. 7. 13. 이전에는 원고에게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없는 객관적인 장애가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그런데 이 사건 소는 그로부터 5년이 경과되기 전인 2008. 2. 29. 제기되었음이 기록상 명백하므로,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는 피고의 항변은 이유 없다.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의 경우 위와 같은 피해를 당한 원고를 보호할 필요성은 큰 반면,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오히려 위헌적 불법행위로 국민의 인권을 중대하게 침해한 피고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채무의 이행을 거절하는 것을 소멸시효제도를 들어 인정하게 되면 이는 현저히 부당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고 판단되므로, 결국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거나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할 것이므로, 이 점에서도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은 받아들일 수 없다.
4. 손해배상책임의범위
나아가 위자료의 액수에 관하여 보건대, 앞에서 인정한 피고의 불법행위의 내용과 정도, 원고에게 선고된 형의 종류와 정도, 복역기간, 불법행위가 이루어진 시점과 현재의 시간적 간격, 원고의 사건 당시 나이, 가족관계, 가정환경, 출소 후의 생활환경, 뒤에서 보는 바와 같이 지연손해금 기산일을 당심 변론종결일로 하는 점을 비롯하여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모든 사정, 특히 국민의 보호자인 국가에 의하여 저질러진 이 사건 불법행위에 대한 비난가능성이 매우 큰 점, 젊은 나이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공포 속에 감금·수감생활을 하면서 황폐한 인생을 살아 온 원고의 고통이 매우 극심한 점 등의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원고에 대한 위자료 액수는 3억 원으로 정함이 상당하다.
따라서 피고는 원고에게 3억 원 및 이에 대하여 원고가 구하는 바에 따라 당심 변론종결일 다음날인 2011. 9. 3.부터 피고가 이행의무의 존부 및 범위에 관하여 항쟁함이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이 판결 선고일인 2011. 9. 21.까지는 민법이 정한 연 5%의,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정한 연 20%의 각 비율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5. 결 론
그렇다면 당심에서 확장된 청구를 포함하여, 원고의 청구는 위 인정범위 내에서 이유 있어 이를 인용하고, 나머지 청구는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할 것인바, 제1심 판결은 이와 결론이 일부 달라 부당하므로, 원고의 항소를 일부 받아들여 제1심 판결을 주문과 같이 변경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