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방법원 2008. 7. 23. 선고 2006가합6404 판결 [손해배상(기)]
판시사항
참조조문
참조판례
심판대상조문
판례내용
- 원고
- A 소송대리인 변호사 정인봉
- 피고
- 대한민국 소송대리인 정부법무공단 담당변호사 이재락, 박준범 변론 종결 2008. 6. 25.
- 판결 선고
- 2008. 7. 23.
1. 피고는 원고에게 50,000,000원 및 이에 대한 2006. 2. 21.부터 2008. 7. 23.까지는 연 5%의,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
2. 원고의 나머지 청구를 기각한다.
3. 소송비용 중 1/5은 피고가, 나머지는 원고가 각 부담한다.
4. 제1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
피고는 원고에게 500,000,000원 및 이에 대한 이 사건 소장 송달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20%의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
1. 기초사실
다음 각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거나, 갑 제1호증, 을 제1 내지 5호증의 각 기재(가지번호 있는 것은 각 가지번호 포함)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이를 인정할 수 있다.
가. 원고의 여권 발급 신청
(1) 원고는 북한에서 B연합총회사 총사장 겸 노동당중앙위원회 자료연구실 부실장을 지내다가 1997. 2.경 대한민국에 망명하였다.
(2) 원고는 2003. 2. 5. 미국 방위포럼재단(Defense Forum Foundation)으로부터 미국 방문 초청을 받았고, 미국 허드슨연구소로부터 2003. 7. 21. 및 2004. 6. 24. 미국 방문 초청을 받았다.
(3) 원고는 2004. 6. 4. 대행기관인 서울 종로구청을 통하여 피고 산하 외교통상부에 여권발급을 신청하였으나 외교통상부에서는 여권을 발급해 주지도 않고, 여권발급을 거부하는 의사도 명시하지 아니하였다.
(4) 한편, 2004. 3. 8.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 있는 ‘탈북자동지회’ 사무실 출입문 앞에서, 그리고 2004. 8. 24. 서울 종로구 교북동에 있는 사단법인 북한인권시민연합 사무실 출입문 앞에서 원고의 신변을 위협하는 내용의 글 등이 발견되었다.
나. 여권 발급 거부처분
(1) 원고는 자신의 여권발급신청에 대하여 외교통상부가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자, 이를 여권발급신청에 대한 거부처분을 한 것으로 판단하고, 2004. 7. 20. 외교통상부장관을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여권발급신청에 대한 거부처분취소소송을 제기하였으나 행정법원에서 거부처분으로 볼 수 없으므로 그 소송이 부적법하다는 이유로 각하판결을 받은 후 항소하여 항소심에서 이를 부작위위법확인소송으로 변경한 후 2005. 11. 25.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으로부터 ‘원고의 2004. 6. 4.자 여권발급신청에 관한 외교통상부장관의 부작위가 위법임을 확인한다’는 원고 승소판결(이하 ‘이 사건 확인 판결’이라 한다)을 받았고, 이는 그 무렵 확정되었다.
(2) 외교통상부는 위 소송 진행 중인 2004. 8. 24. 법무부에 원고가 구 여권법(2006. 2. 21. 법률 제7849호로 개정되기 이전의 것, 이하 ‘법’이라고만 한다) 제8조 제1항 제5호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법 제8조 제2항상의 협의를 요청하였다. 이에 법무부는 2004. 10. 8. ‘원고가 해외 여행시 북한의 테러를 받을 위험성이 있고, 북한도 최근 원고에 대한 신변 위해 의도를 나타낸 바 있어서 신변에 이상이 발생할 경우 남북관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외교통상부에서 원고에 대해 법 제8조 제1항 제5호에 해당한다고 인정하면 여권발급을 거부함이 가능하나, 이에 해당한다고 보지 아니하면 여권발급과 관련하여 초청자 측의 책임 있는 신변안전대책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는 취지의 의견을 회신하였다.
(3) 한편, 원고는 2005. 2.경 국가인권위원회에 여권을 발급하여주지 않는 것이 인권침해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진정서를 제출하였는데, 국가인권위원회는 2005. 10. 6.경 ‘외교통상부장관은 원고의 여권을 발급하되, 미국이 원고의 방미기간 동안 신변안전대책을 강구할 때까지 국가인권위원회가 여권 원본을 보관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조정안을 제시하였으나, 원고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4) 이 사건 확인 판결 이후 외교통상부는 원고에 대하여 국가정보원에 조회를 하였고, 이에 대하여 국가정보원은 2006. 1. 13. ‘원고는 현재 신변 위해 가능성으로 인해 24시간 특별신변보호를 받고 있는 사람으로, 미국 초청자 측이나 관계기관에서 신변대책이 강구되지 않은 상황에서 방미가 이루어질 경우 정부는 해외에서 정상적인 신변보호 활동을 할 수 없어 방미기간 중 신변 위해 가능성이 농후하다. 따라서 원고에 대한 여권발급을 한시적으로 보류하고 초청자나 관계기관의 신변안전대책이 강구된 후에 여권을 발급하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의 화신을 하였다.
(5) 이에 외교통상부장관(대행기관: 서울 종로구청장)은 원고에게 여권을 발급하지 않기로 결정한 후 2006. 1. 16. 원고에게 여권신청서류를 반송하였다(이하 ‘이 사건 거부처분’이라 한다).
다. 이 사건 취소 소송
이에 원고는 2006. 1. 31. 외교통상부장관을 상대로 다시 서울행정법원에 거부처분취소소송을 제기하였고, 1심인 서울행정법원에서는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으나,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에서는 2007. 5. 3. 이 사건 거부처분의 사유가 법 제8조 제1항 제5호상의 사유에 해당하지 아니하고, 따라서 이 사건 거부처분은 위법함을 면치 못하므로 이를 취소한다는 취지의 원고 승소판결을 하였고, 상고심인 대법원에서 2008. 1. 24. 외교통상부장관의 상고를 기각하여, 위 승소판결(이하 ‘이 사건 취소 판결’이라 한다)이 확정되었다.
2. 이 사건 청구원인
여권발급 업무를 집행하는 피고 산하의 공무원은 원고의 여권발급신청을 거부할 하등의 사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위법하게 여권의 발급을 거부하였고, 심지어는 원고의 신청에 대해 아무런 응답조차 하지 않는 위법상태를 장기간 계속하였다. 원고는 그로 인하여 거주·이전의 자유를 침해당하였고, 사회적·정치적 활동을 제약당하는 등 많은 정신적 고통을 당하였다. 따라서 피고는 공무원의 위와 같은 직무집행상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원고가 입은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금으로 500,000,000원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3. 불법행위의 성립 여부에 관한 판단
가. 청구원인에 관한 판단
(1) 살피건대, 앞서 본 증거 및 기초사실에서 알 수 있는 다음 (2) 내지 (3)항 기재와 같은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 소속 공무원(외교통상부장관 및 여권발급 담당 공무원)의 위와 같은 부작위 및 거부처분은 통상적인 공무원의 객관적 주의의무를 결하여 적법한 재량의 범위를 넘어 원고의 거주·이전의 자유 및 행정청으로부터 응답받을 권리를 침해한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판단된다.
(2) 먼저, 부작위에 관하여 본다.
원고가 2004. 6. 4. 여권발급신청을 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피고 소속 공무원이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아니하고 있다가 이 사건 확인판결에서 원고가 승소한 후인 2006. 1. 16.에 이르러서야(원고 신청시로부터 1년 7개월 경과) 원고에게 여권을 발급할 수 없다는 회신을 하여 이 사건 거부처분을 한 것은 법률상의 응답의무 있는 공무원이 원고의 여권발급신청에 대한 응답업무를 고의 내지 과실에 기하여 현저히 해태하여 처리한 것이 명백하고, 도중에 원고가 소송 등을 제기하기까지 하였음에도 위와 같은 부작위를 계속한 것은 다분히 고의에 기한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판단된다.
(3) 다음으로, 거부처분에 관하여 본다.
피고 소속 공무원이 이 사건 거부처분의 사유로 내세운 사유는 아래와 같은 이 사건 거부처분 당시의 사정들 내지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법 제8조 제1항 제5호의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현저히 해할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을 뿐 아니라, 통상의 공무원이라면 원고의 경우 위 법 제8조 제1항 제5호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고 보인다.
① 헌법이 보장하는 거주·이전의 자유는 본질적 내용의 기본권으로서,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나, 그에 대한 제한을 하는 경우에도 필요 최소한도의 규제만 이루어져야 한다. ② 법 제8조 제1항 제5호는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현저히 해할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자’에 대하여 여권의 발급을 거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위 규정은 막연하고 불명확한 개념을 사용하고 있어서, 기본권 제한의 법리에 비추어 볼 때 행정청이 이를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거주·이전의 자유를 부당히 제한하는 사유로 악용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그 해석에 있어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다. ③ 특정인의 특정 국가로의 출국을 금지할 필요가 있는 경우 여권의 발급을 제한하는 방법 이외에도 방문할 국가에 대하여 해당 자국민에 대한 비자의 발급제한을 협의하거나, 출입국관리법 제4조 제1항 제6호의 규정에 의하여 출국을 금지하는 방법도 있는바, 비자의 발급단계나 공항에서의 출국단계보다 훨씬 이전의 단계인 여권의 발급단계에서의 발급제한은 거주·이전의 기회 자체를 사전에 원천봉쇄하게 될 가능성이 크므로 그 적용에 있어 더욱 엄격할 필요가 있다. ④ 담당공무원으로서는 구체적인 경우 여권발급신청자가 법 제8조 제1항 제5호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함에 있어서 같은항 제1호 내지 제4호(입국거부대상자, 기소자, 기소중지자, 전과자 등)의 사유를 참조할 수 있을 것인데, 제5호에 해당하려면 적어도 제1 내지 4호와 대등한 정도의 사유가 있다고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위 제1호 내지 제4호의 사유들은 여권발급신청자에게 책임 있는 사유가 있고, 그러한 사유가 공적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이에 따라 당해 신청자의 권리가 제한되는 경우이다. ⑤ 이 사건 거부처분 당시 원고의 신변에 이상이 발생할 경우 남북관계에 지장이 초래된다는 점 내지 국익·공익이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는 점 등에 대하여 별다른 증거가 없고, 비록 원고에 대한 협박문 등이 2004. 경 국내에서 2회 발견된 바 있었던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으나, 이 사건 거부처분 당시인 2006년경 국내 또는 해외에서 원고의 신변에 이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볼 만한 별다른 증거를 찾아볼 수 없다. 또한, 위 처분 당시 담당공무원이 원고의 신변에 이상이 발생할 가능성, 그로 인한 국익·공익의 현저 저해 여부에 대하여 자세히 검토한 것으로도 보이지 아니한다. ⑥ 미국에서의 원고에 대한 신변안전대책은 여권발급신청자인 원고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기보다는 여권발급권자가 방문국 국가의 관계기관과 협의하여야 할 사항이라고 보이는바, 이 사건 거부처분 당시 방문국과의 협의 등이 곤란한 상황(예컨대, 방문국의 정치적 혼란, 방문국과의 외교적 적대관계 등)이었다고도 보이지 아니한다.
결국, 원고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할 의무를 지고 있는 국가기관이 원고의 신변에 이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얼마나 있는 것인지, 원고의 신변에 이상이 발생할 경우 국익·공익에 어떠한 영향이 있는 것인지 등에 대하여 면밀히 검토하여 보지도 아니한 채, 원고에게 책임 없는 사유(원고가 미국으로부터 신변보장에 대한 확답을 받아오지 않는다는 사유)를 근거로 원고에 대한 여권발급을 거부한 것(해외여행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박탈한 행위)은, 국가가 자신의 의무는 다하지 아니하면서 이를 내세워 오히려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한 행위로서 통상의 공무원을 표준으로 보더라도 객관적 주의의무를 결하여 정당성을 상실한 처분임이 명백하다.
다. 소결
피고 소속 공무원의 위와 같은 고의 내지 과실에 기한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인하여 원고가 상당한 정신적인 고통을 받았을 것임은 경험칙상 명백하므로, 피고는 원고의 정신적 고통을 금전으로나마 위자할 의무가 있다.
4. 손해배상(위자료)의 범위에 관한 판단
나아가 피고가 원고에게 지급할 위자료 액수에 관하여 보건대, 앞서 본 바와 같은 피고 소속 공무원의 장기간의 부작위, 그로 인하여 원고가 4년여에 걸친 두 차례의 소송을 통하여 가까스로 권리의 구제를 받게 된 점, 피고 측의 자의적인 이 사건 거부처분 등으로 인해 원고는 해외에서 활동할 수 있는 권리를 장기간 박탈당한 점, 이로 인해 정치적 이유로 망명한 원고가 사회적·정치적 활동에 있어 상당한 제약을 받게 되었던 점, 반면, 원고는 피고로부터 장기간의 신변보호를 받는 자로서 피고로부터 어느 정도의 도움을 받고 있는 신분인 점, 피고가 국가인권위원회에서의 조정 등을 통하여 이 사건의 조기 해결을 위해 노력하였던 점 등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모든 사정을 참작하여 50,000,000원으로 정함이 상당하다.
5. 결론
따라서, 피고는 원고에게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금으로 50,000,000원 및 이에 대하여 불법행위일 이후로서 원고가 구하는 바에 따른 이 사건 소장부본 송달 다음날임이 기록상 명백한 2006. 2. 21.부터 피고가 이행의무의 존부 내지 범위에 관하여 항쟁함이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이 판결 선고일인 2008. 7. 23.까지는 민법이 정한 연 5%의, 그 다음날부터 갚는 날까지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정한 연 20%의 각 비율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으므로, 원고의 청구는 위 인정범위 내에서 이유 있어 이를 인용하고 나머지 청구는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